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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연필, 지우개, 책(Paper, Pencil, Eraser, Book)》

《종이, 연필, 지우개, 책(Paper, Pencil, Eraser, Book)》

Nov 4, 2026 – Nov 27, 2026 · Seoul

《종이, 연필, 지우개, 책》은 작가의 책상 위에 늘 놓여 있던 네 가지 사물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들이 가리키는 것은 사물 그 자체보다 그것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그리는 일’이다. 빈 종이 앞에서 기다리고, 연필로 선을 긋고,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리며, 그렇게 쌓인 시간이 한 권의 책처럼 겹쳐진다. 매일 새로운 이름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작가는 오래된 이름들을 다시 부르며, 자신의 작업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되짚는다. 김한나는 상상의 토끼와의 관계를 매개로 타인과의 소통, 환경에의 적응, 내면의 감정을 탐구해 왔으며, 회화, 드로잉, 조각, 애니메이션, 동화를 넘나들며 작업 세계를 넓혀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 세계를 잠시 접고 드로잉과 회화로 손의 자리에 다시 선다. 부드럽게 층층이 쌓인 선과 색으로 화면의 밀도를 만들어 온 작가에게 그리는 일은 그리고, 지우고, 지운 자리 위에 더 깊이 다시 그려 나가는 과정이다. 지운 자리에 남은 희미한 자국과 덧칠한 층 아래의 시간은 이번 출품작에서 작업이 지나온 흔적으로 드러난다. 작가의 오랜 동반자인 토끼 역시 이 시간에서 태어난다. 곧게 가다 멈추고 다른 길을 만나던 연필 선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 갑자기 토끼의 귀가 된다.” 회화는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업으로, 제목에서부터 작가 특유의 다정한 유머가 묻어난다. 〈토끼 연필〉과 〈길을 그리자〉는 연필 선 끝에서 길이 시작되고 토끼가 태어나는 순간과 맞닿아 있고, 〈연필 냄새 감별사〉는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연필의 냄새까지 붙잡아 낸다. 〈안 읽으면 손해야〉, 〈독서의 전진〉, 〈공부〉는 책을 펼치고 한 장씩 넘겨 가는 시간을 불러온다. 유화 물감을 겹겹이 올려 만든 부드러운 색의 층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고 쌓아 가며 깊어지는 그리기의 시간을 화면 위에 남긴다. 드로잉은 종이 위에 색연필과 오일 파스텔, 아크릴을 함께 쓴 작업이다. 색연필의 가는 선, 문지를수록 번지는 오일 파스텔의 질감, 그 위를 덮는 아크릴의 면이 한 장의 종이 위에서 겹친다. 서로 다른 성질의 재료를 긋고, 문지르고, 덮는 손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남는 이 작업들은 전시 제목 속 종이와 연필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 준다. 전시 도록에서는 오은 시인이 동시의 형식으로 쓴 서문을 만날 수 있다. 행과 행 사이에 여백을 두고 천천히 나아가는 시의 호흡은 한 줄을 긋고 한 장을 넘기는 이번 전시의 시간과 닮아 있으며, 언어로 쓴 시와 손으로 그린 그림은 서로를 비추며 전시를 읽는 또 하나의 길을 열어 준다. 《종이, 연필, 지우개, 책》은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 이미 곁에 있던 것을 다시 바라보는 전시다. 관객은 한 줄을 긋고, 한 번 지우고, 다시 그리는 손의 시간을 따라가며, ‘한나와 토끼’의 세계가 종이 위의 한 줄에서 시작되었음을 마주하게 된다. “ 종이는 아직 종이다 / 연필은 아직 연필이다 / 지우개는 닳고 있다 / 책은 펼쳐져 있다 / 토끼는 살아 있다 / 그리고 나는 그린다.” — 김한나, 작가 노트 중

DatesNov 4, 2026 – Nov 27, 2026
TypeExhibition
Venue갤러리 플래닛
Address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71길 14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71길 14
AdmissionFree
Contact02-540-4853
TicketsOfficial booking ↗
Official sitewww.galleryplane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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